조선시대의 패션과 뷰티 - 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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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전기와 후기의 저고리 길이를 비교해 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. 시간이 흐를수록 저고리는 점점 짧아졌답니다.
조선여인의 저고리 변천사
1. 18세기 한양을 뒤흔든 '초미니 저고리'
조선 후기로 갈수록 저고리 길이는 극단적으로 짧아졌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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길이의 변화: 초기에는 허리까지 내려오던 저고리가 후기에는 가슴 겨우 가릴 정도(약 14.5cm)까지 올라갔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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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리개용 허리띠: 저고리가 너무 짧아지다 보니, 치마 위로 속살이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하얀 천으로 된 '가슴 가리개'를 따로 둘러야 할 정도였죠. 당시 어른들은 "요즘 젊은것들 옷 꼬락서니가..."라며 혀를 찼다는 기록도 있습니다. (Y2K 크롭탑 열풍과 비슷하죠?)
2. '항아리 라인' 치마의 실루엣
저고리가 짧아진 대신, 치마는 엄청나게 풍성해졌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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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지기 치마: 치마 안에 층층이 겹쳐 입는 속치마를 여러 벌 입어 하체를 항아리처럼 부풀렸습니다. 걸을 때마다 찰랑거리는 실루엣이 당시 여성들이 추구했던 최고의 미(美)였습니다.
"갓이 곧 자존심" 남성 패션의 완성, 액세서리
조선 선비들에게 패션의 완성은 단연 **'머리 위'**와 **'허리춤'**에 있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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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AI이미지입니다. |
1. '갓'의 화려한 변신
외국인들이 보고 "햇(Hat)의 나라"라고 감탄했던 조선의 갓은 단순한 모자가 아니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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갓끈의 사치: 돈 좀 쓴다 하는 선비들은 호박(보석), 산호, 대나무 등을 엮은 아주 긴 갓끈을 가슴 아래까지 늘어뜨렸습니다. 바람이 불 때마다 갓끈이 찰랑거리는 모습이 선비들의 '간지' 포인트였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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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포갓 유형: 한때는 갓의 챙(양태)을 엄청나게 넓게 만드는 것이 유행해서, 좁은 길에서 두 사람이 지나가려면 갓이 부딪혀 싸움이 날 정도였다고 하네요.
2. '세찬(細饌)'과 노리개
남성들도 허리띠에 정교한 조각이 들어간 칼(장도)이나 향주머니, 부채를 매달아 멋을 냈습니다. 부채 하나를 들어도 어떤 선추(부채 고리에 매는 장식)를 달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안목이 결정되었습니다.
조선의 뷰티 템: '연지'와 '가체'
1. "높을수록 권력이다", 가체(加髢)
여성들의 머리 장식인 '가체'는 크고 화려할수록 신분이 높음을 상징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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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게의 압박: 가체가 너무 무거워서 신부의 목이 꺾이는 사고가 날 정도였다니,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했습니다. 결국 영조 임금은 사치가 너무 심하다며 가체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죠.
2. '백분'과 '연지'의 조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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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장법: 쌀가루나 분꽃 씨앗을 갈아 만든 가루로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, 눈썹은 가늘고 길게 그렸습니다. 입술에는 홍화에서 추출한 '연지'를 찍어 포인트를 주었죠.
🕶️ 재미있는 사실: 선글라스의 조상, '풍안(風眼)'
조선시대에도 선글라스가 있었다는 사실, 아시나요?
말총을 촘촘하게 엮어 만든 **'풍안'**은 먼지를 막고 눈을 보호하는 용도였지만, 멋쟁이 선비들이 애용하는 패션 아이템이기도 했습니다.

